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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도서관

심리학이 분노에 답하다

by 금수저성장기 2023.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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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억누르는 이유

분노를 억누르면 한동안 우호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갈등을 피할 수 있다. 갈등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분노를 억누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하고자 한다. 이때 안전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분노를 억누르고 다른 사람의 행위를 묵인하면 더 무례한 행동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나중 일이다. 지금의 잠재의식은 나와 우리가 모두 좋은 이 순간이 계속되길 바랄 뿐이다. 분노를 억누르면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다. 분노를 표출하면 감정적이고 비전문적인 사람으로 보일까 봐 걱정하는 사람 역시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분노를 억누른다. 분노를 억누르면 너그럽고 관대하며 감정 조절력이 뛰어나 보이기 때문이다. 분노를 억누르면 현재 상황에 대처하는 데 유리하다. 사람들이 분노를 억누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감정 억압에는 이성이 작용하지만, 감정 표현에는 감성이 작용한다. 악업은 이성의 역량이고 표현은 감성의 역량이다. 몸 안에서 전혀 다른 힘이 움직인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성은 한계가 있고 감성은 무한하다. 따라서 분노를 억누르고 싶더라도 다음의 두 상황에서 이성은 무력화된다. 분노가 너무 높으면 이성은 힘을 잃는다. 분노가 너무 높아지면 감성이 이성을 능가하고 분노가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충동적인 행동을 저지를 수 있다. 고객에게 화를 참지 못했다가 일자리를 잃기도 하고, 자녀에게 화를 냈다가 자녀가 가출하기도 한다. 모두 순간적인 분노를 찾지 못해 일어난 심각한 결과다. 사실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아침에 일어나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다가 그만 입을 데었다. 이때 느껴지는 통증은 나의 입술이 화상을 입었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면 얼른 찬물을 한 모금 마시고 통증을 완화한다. 아픔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는 꼭 필요한 감각이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더 무섭지 않은가. 입술이 화상을 입어도 깨닫지 못하고 상처가 더 심각해져도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체의 통증은 우리 몸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려주는 일종의 신호다. 비참함을 더 경험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전면 부정이라는 또 다른 무기를 사용한다. 분노했던 경험을 떠올려 보자. 넌 조금도 전혀, 너는 지금껏 내내, 너는 매번 항상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가. 전면 부정은 과장한 표현을 사용한 일반화다. 전면 부정을 이용한 표현법은 상대를 어떤 일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 그 순간 그 일을 완료하지 못한 사람, 나아가 언제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지금까지 항상 잘 해냈던 일도 지금, 이 순간 잘 해내지 못하면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부정적인 라벨을 붙이는 행위는 점에서 면으로 나이가 인격을 부정한다.

 

자기 가치감을 확인하는 중요한 경로, 분노

분노하면 다른 사람이 밉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면 자신에게 어떤 이점이 있을까? 상대방의 부족함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부각할 수 있다.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생각할수록 내가 잘한 것 같고, 상대방의 단점을 경멸할수록 나의 모든 것이 장점 같다. 상대방을 미워하면 자신의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 상대방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경우 나는 답답하고 불만이 쌓인다. 그런데 이 감정을 느끼는 사이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까? 상대방은 왜 나처럼 헌신적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왜 새치기하는 거예요. 교양 없네!라고 비난할 때 마음속에 나는 줄을 잘 서니까 교양 있는 사람이야 라는 우월감이 자리한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 계발이 부족하다고 비난할 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는 자기 계발에 적극적이야 라는 자부심이 있다. 분노는 나쁜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를 억누르거나 충동적으로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노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해야말로 변화를 이끄는 최고의 길이다. 분노가 지나간 후 혼자 있을 때 복기하고 돌이켜보면서 자신에게 왜 분노했는지는 물어보자. 성장은 무지에서 깨달음을 거쳐 통찰까지 가는 과정이다. 어쩌면 이렇게 많은 것을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치는 다 알아도 여전히 화가 나는 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분노 탐구는 자신을 이해하고 더 강하게 변화시키는 최고의 방법이다. 하지만 분노 탐구에도 한계가 있다. 아무 때나 분노를 탐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분노 탐구가 언제나 적절한 것은 아니다. 이따금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먼저 처리해야 하는 일도 있다. 심리적으로 굳건할 때 분노에 대해 탐구해야 한다. 우리는 어느 순간 마음이 매우 취약해질 때가 있다. 그저 위로받고 보호받고 싶을 때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분노를 탐구한다는 것은 마치 자기 몸을 수술하듯 내 몸을 안에서 또 다른 자아를 끌어내어 자신의 분노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분노가 지나간 후에 분노에 대해 탐구하라고 제안한다. 분노가 일어났을 때 이에 대한 탐구를 강행할 필요는 없다. 분노가 지나간 후 에너지와 여력, 관심이 있을 때 다시 상황을 복기하며 그 당시의 분노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도 충분하다. 요구를 낮춘다고 요구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요구를 낮춘다는 것은 자기 능력의 한계와 자기 의지의 한계를 존중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기 요구를 낮추는 것의 본질은 자기 존중이다. 자신이 신이 아니라 한계가 있는 사람임을 존중하는 것이다. 자신이 요구에 통제되는 사람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사람임을 존중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 요구를 낮추면 자신의 규칙이 깨지는 원치 않는 결과가 생긴다. 이는 자기 요구를 낮추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마음에 스승의 말씀을 배반하는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온다. 금기를 깨고 벌을 기다리는 제자처럼 말이다. 헌신은 무서운 일이다. 헌신하면 대가를 기대한다. 헌신할 때마다 잠재의식은 대가가 동등하거나 심지어 더 많은 대가를 주지 않으면 분노가 일어난다는 자신이 자발적으로 행동했고 대가를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잠재의식은 대가를 바란다. 다만 물질적인 성의보다 감격, 인정 등 심리적 측면의 대가를 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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